일본 SF 만화 붐 자체는 6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이 때의 작품들은 태동기에 가까웠던 만큼 독자들에게 새로운 소재를 소개해주는 역할이 컸으며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80년대 중순 경에는 일본 SF의 독자층의 기반이 넓어져 자기 자신을 패러디하는 작품이 상업적으로 연재가 가능해질 정도가 되었는데, 이런 현상을 잘 나타내주는 작가가 바로 아사리 요시토이다.

 

아사리 요시토는 학습만화 시리즈인 "망가 사이언스" 총 14권을 대학교수 등 타 전문가와 함께하지 않고도 인기리에 연재할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과학지식을 갖추었으며, 우주가족 칼빈슨, 와하맨 등의 다양한 작품에서 SF 서브컬쳐 및 Trope (트로프: 여러 작품에 걸쳐 광범위하게 등장하는 장르적 장치) 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도와 함께, 또 그것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패러디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그의 작품 중 "HAL - Hyper Academic Laboratory" 는 학습 만화의 trope들을 주로 패러디한 작품으로, 작가가 학습 만화로 얻은 명성을 생각하면 재밌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때로 등장하는 신체 노출과 페티시적인 연출에 눈살을 찌푸릴 사람도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작가 자신이 그 기저에 깔린 감수성을 다루는 방식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느껴져 이야기 흐름에 묘한 파괴력을 줄 정도이다.

 

아사리 요시토는 일본 SF만화 붐의 끝자락에 있는 작가이지만, 그만큼 장르적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은 매우 훌륭하다. 물론 일본 독자들의 SF 문해력이 SF 붐 시기를 거치며 평균적으로 매우 높아져 있었고 그럼에도 작가가 그런 환경을 인지하고 그에 걸맞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가족 칼빈슨"은 미완으로 끝났으나 SF붐의 황혼기에 걸맞는 장르적 원숙미가 있는 작품이다.

 

비록 아사리 요시토의 작품들 중 정발된 작품은 학습만화인 "망가 사이언스" 시리즈 뿐이지만, 타 작품들도 원서로라도 구해서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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